"사랑하는 딸 보보에게, 아빠 김복진으로부터"
‘손끝에서 피어나는 글귀’는 조각가 김복진 작가가 딸에게 쓴 편지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그리운 마음이 담긴 글귀를 단순히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 손끝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촉각적 형태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복진 작가의 편지를 기반으로 한 하나의 유체 조형 작품을 선보이며, 글귀가 가진 깊은 의미와 감정을 관람객에게 전합니다.
촉각을 통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유체 조형은 글귀와 감각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유연하고 끊임없이 흐르는 유체는 언어와 의미의 가변성을 상징하며, 그 움직임 속에서 글귀는 시각적, 촉각적 형태로 피어납니다. 이 과정은 마치 피부에 글귀가 새겨지고, 손끝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면의 감정이 어우러지는 이번 작품은 글귀와 감각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울림을 선사합니다.
손끝에서 시작된 이야기. 그 깊은 감각을 천천히 느껴보세요.
이번 전시에서는 조향사 국인정님과의 협업을 통해 감각의 영역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국인정님만의 해석으로 이를 유체 조형에 향기로 담아냈습니다. 그리움의 향기를 통해 관람객은 글귀와 촉감, 그리고 후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적 여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
국인정 조향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
사랑과 증오는 한 끝 차이다, 그래서 ‘애증’ 이라 부른다 했습니다.
‘그리움’ 이라는 단어는 ‘사랑’과, ‘애증’ 같은 감정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쌓여 생긴 말 같습니다.
10여 년 전에는 그리움을 ‘향수(鄕愁)’ 로 담아내기 적합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의 후회와 아쉬움의 순간이 더 쌓이고 나니 이제는 ‘그리움’ 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이 시큰하니 목이 메이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에게 ‘그리움’의 소재는 ‘어머니’입니다.
그녀가 이렇게나 가슴에 박힐 만큼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을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한글이 참으로 신비합니다. ‘사랑해’ 라는 말로는 전부 담을 수 없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태어나 처음 뚜껑을 열어본 향수는 디올의 ‘쁘아종’ 이었습니다.
어린 날의 저는 엄마가 마스카라를 바르고 화장하는 모습을 보는게 좋았습니다. 늘 화장이 끝날 때까지 앞에 앉아 있었어요. 엄마의 옷, 가방, 화장대에서는 늘 은은하고 이국적인 향이 났습니다. 세련되고 화려한 여성이었고, 지금 보니 정말 빼어난 미인이셨어요.
하지만 한 살 한 살 더 나이를 먹어가고,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원래 소녀같은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립스틱 외에는 화장을 짙게 하지 않았고, 옷은 구두 외에는 포멀한 정장을 입습니다. 술 담배를 평생 해본 적 없으시고 자식들에게 몸에 좋은 것을 먹이는 것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 50대부터는 향수를 사용하지 않으셨는데, 늘 은은한 장미향이 났습니다. (장미향 나는 보라색 비누를 쓰셨어요.)
각인된 향기는 이성적인 기억과 별개로 뇌가 그 자체를 메모리로 저장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같은 기억도 해석하는 그림이 달라지는 것. 그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늘 은은하게 배어있던 그녀의 화려한 향기는, 지금 같은 자리에 서서 보니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큰 사업체와 삼남매를 혼자서 안고 가야 했던, 강해져야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방패 같은 것이었을까. 이제는 아름다운 잔향이 아니라 안쓰럽고 짠하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쁘아종은 이제 저에게 섹시하고 치명적인 향이 아니라 그립고 짠한 향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미화되며 서서히 흐려지나, 그리움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앰버와 패츌리의 잔향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담은 프랑킨센스와 미르에서 나무의 깊은 진액과 땅의 냄새를 담은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강인한 듯한 향기 뒤편에 피어나는 천연 로즈제라늄과 네롤리 플라워를 통해 그녀의 소녀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사랑이 ‘현재진행형’ 일 때 많이 표현하세요. 사랑을 보내세요. 사랑을 보냅니다. 2025년 2월, 국인정 드림.




